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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화의 아름다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27일 개막)에 나온 ‘책가도 10폭’. 미술관의 신소장품으로 지난 12월 크리스티 뉴욕의 '미카 에르테군 컬렉션' 경매에서 낙찰받은 것이다. 문소영 기자







지난 12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 끝에 9억3000만원(수수료 포함)에 인천소상공인지원센터 낙찰된 조선 책가도(책거리). 이 귀한 그림을 손에 넣은 이가 누구인지 마침내 밝혀졌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에 미술관 소장품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이 ‘책가도 10폭’은 경매에 오른다는 뉴스가 나올 때부터 화제였다. 뉴욕의 대부호이자 인테리어 사업가인 미카 에르테군이 가족관계증명서 인터넷발급 소장했던 유일한 한국 고미술품인 데다가 ‘책가도의 대가’라고 불리는 궁중화원 이택균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중앙SUNDAY 2024년 12월 21일자 16~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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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균 '책가도 10폭' 부분확대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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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균 '책가도 10폭'에서 1폭(맨 오른쪽) 상단에 '이택균인'이라고 각인된 도장이 다른 인장들 틈에 놓여 있다. 문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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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전시된 실물을 보니, 그림 속 책가(冊架·책장)의 맨 오른쪽 상단에 이택균의 이름이 새겨진 사각 인장이 여러 인장들과 함께 있었다. 책가도 화가가 장난스럽게 자신의 서명을 숨겨놓는 방법이다. 가지런히 쌓인 책들과 함께 산호 가지와 공작 깃털을 꽂은 화병 등 그 시기 조선인들이 동경했던 온갖 ‘럭셔리 굿즈’가 정교한 필력으로 묘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에서는 관람객과 고미술작품의 전시 간격이 멀게 설치되어 이런 디테일을 살피기가 쉽지 않은데 이번 전시는 유리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작품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게 설치됐다.

‘책가도 10폭’을 보는 기자의 감회는 남달랐다. 사실 기자도 이 책가도 경매에 참여했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낮은 추정가인 1만5000~2만5000달러(당시 환율로 2100만~3500만원)에 경매에 나왔기에 ‘조선 책가도의 가치를 모르는 이가 헐값에 구입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추정가보다 더 높은 2만8000달러(한화 4000여만원)에 응찰했다. 그러나 걱정이 무색하게 10분간의 치열한 경합 끝에 상위 추정가의 20배에 달하는 51만 달러(7억4000만원. 수수료 이전 가격)에 낙찰됐다. 그 낙찰의 주인공이 바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재단이 따로 없는 회사 소속이므로 ‘책가도 10폭’의 새 주인은 아모레퍼시픽 기업인 셈이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월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 전시 전경. 문소영 기자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3월 27일 개막한 '조선민화전' 전시 전경. 문소영 기자







현문필 미술관 학예팀장은 “조선민화전을 기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은 후 응찰했다”며 “전시를 염두에 두었고 또 문화재를 국내로 환수하고자 하는 의지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희도 처음 추정가가 너무 낮아서 미끼인가 싶었는데 막상 경매 때 가격이 치솟으니 조마조마 했어요. 책가도 거래 가격 등을 보고 정해놓은 상한선이 있었으니까요. 다행히 낙찰 받았고 이렇게 전시에 소개하게 되어 기쁩니다.”

100여 점의 민화와 공예품을 아우르는 ‘조선민화전’은 이택균의 ‘책가도 10폭’을 포함한 6점의 화려한 책거리 그림들로 시작한다. ‘책가도 10폭’처럼 전통 채색화와 서양식 투시원근법이 결합된 궁중화 책거리는 물론, 좀 더 자유분방한 형태의 민화 책거리도 있다. 이로써 정조 임금의 사랑을 얻어 궁중화로 꽃핀 책거리가 점차 부유한 중인과 서민에게도 퍼지면서 민화로 발전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관동팔경도 8폭 병풍’등도 볼 만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서 관람객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책거리 12폭 병풍'을 바라보고 있다. 1918년 작으로 근대 서양 문물이 기물에 포함된 것이 흥미롭다. 문소영 기자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18년 작 '책거리 12폭 병풍'의 부분 확대. 영문이 새겨진 담뱃갑의 모습의 이채롭다. 문소영 기자







특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1918년 작 ‘책거리 12폭 병풍’은 그 거대한 규모와 분홍색과 금분을 포함한 화사하고 선명한 색채도 일품이지만 영문이 새겨진 담뱃갑·회중시계·손가방 등 당시의 ‘핫한 서양 명품’이 전통 골동품과 함께 묘사돼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펴보게 된다. 지금까지 대중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었던 작품이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백선도 8폭 병풍' [아모래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백선도 8폭 병풍' 부분 확대. 문소영 기자








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서울대 박물관 소장 '백선도 8폭 병풍'이다. 각양각색 부채가 화문석 위에 펼쳐져 있는 그림으로서, 각각의 부채 속 그림이 정밀하게 묘사된 점과 전체 구도의 현대적인 조형미가 놀랍다.서울대 박물관의 권주홍 학예연구사에 따르면 백선도 장르는 "길상의 성격을 지니는 동시에 조선 말기 사대부들의 호사 취미를 위한 장식용 그림"이었다. 부채가 사치품이었으므로 호화로운 기물을 진열해 보여주는 책거리 장르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또한 여러 종류의 그림을 한 병풍에 모은 백납도 장르와도 연결된다. 각 부채에 산수화, 화조화, 사군자 등 각기 다른 그림이 그려져 "다양한 종류의 많은 작품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도록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20개 기관과 개인 소장 작품이 포함된 이번 전시는 이밖에도 ‘화조도’ ‘호작도’ ‘운룡도’ ‘어변성룡도’ ‘금강산도’ ‘평생도’ 등 민화의 대표 장르 등을 포괄하고 있다. 다른 하이라이트로 미술관은 개인 소장 ‘수련도 10폭 병풍’,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 8폭 병풍’ 등을 꼽았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수련도 10폭 병풍'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 소장 '관동팔경도 8폭 병풍'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민화전'에 나온 호림박물관 소장 ‘구운몽도 6폭 병풍’.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현 팀장은 말했다. “사실 민화의 정확한 경계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보시다시피 민화 장르에 속하지만 민중의 소박한 그림이라고 하기에 퀄리티가 너무 높은 그림도 많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을 민화가 아닌 채색화라고 하기에는 채색이 거의 없는 그림도 많지요. 그에 관해 19명 필자의 논고가 들어간 이번 전시 도록을 보면 좋겠습니다. 다만, 일상 생활과 밀착되고 한국의 독자성과 현대성을 갖춘 그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영어 번역도 ‘minhwa’라고 했습니다.”

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