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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어느 감독이 (안중근 영화를)선뜻 (하겠다고) 나서겠어요. 잘해야 본전인데. 한번 대본을 보자고 했죠. 순수 오락영화인거에요. 그렇지만 저는 이 영화가, 그렇게 찍혀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끼는 이 어떤 묵직함으로 찍는데 동의하면 하겠다고 했죠.”
3년을 들여 영화 ‘하얼빈’을 세상에 내놓은 우민호 감독은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 시대를, 그리고 그 거사를 가지고서 오락영화를 찍을 수가 없었다”며 “안중근 자서전을 읽고 독립군들의 에이앤피 고초와 희생, 헌신들이 무겁게 다가왔다. 심지어 거사 당시 안 장군 나이는 불과 30세였다”고 말했다.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과 독립투사들의 하얼빈 의거 여정을 그린 300억원 대작 블록버스터다.
우 감독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당시 2030의 젊은 독립투사들을 언급하다 울컥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제 그러지 말았어야 월세담보 했는데 저도 모르게 울먹었죠. 갑자기 그 말 하는데 제가 그날 밤(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봤던 뉴스 화면이 오버랩 됐어요. 계엄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시민들이 온몸으로 막아내는 그 뉴스 장면이 겹치면서 눈물이 확 난거에요.”
‘하얼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마지막 엔드 내레이션에서 명확하게 전달된다. 안중근의 거사 외국계은행신용대출 이후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악랄해졌고, 해방까지 36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그 이후에도 역사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지만 민초들은 늘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래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 감독은 “안중근 장군이 실제 했던 말씀을 쓴 것”이라며 “영화를 보면서 지금의 우리가 힘을 얻고 위로를 받길 바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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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CJ ENM 제공]


그러면서 “그분들이 밑거름이 된 그 위에서 저희가 살아가고, 또 저희가 밑거름이 되면 다음 세대가 그 위에서 살아갈 것”이라며 “그러다보면 언젠가 더이상 안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적금 비과세 지금과는 다르게”라고 뼈있는 말을 툭 던졌다.
이토 히로부미의 입을 통해 “어리석은 왕, 부패한 유생으로 조선은 망했지만 이 백성들이 제일 문제야”, “300년 전 조선에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있었지만 지금의 조선엔 그런 영웅이 없다”는 뾰족한 대사도 읊는다.
“제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안중근 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 많이 알아봤는데, 실제로 주변 사람들한테 그런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왕과 양반은 별로 무섭지가 않은데, 저 저잣거리 길거리 민초들이 자기를 보는 눈빛이 섬뜩하고 서늘했다고요. 그걸 제가 참고로 해서 대사를 만들었죠.”
그러면서 “1909년엔 안중근 장군과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영웅이었고, 지금도 영웅이 있다”며 “2024년의 영웅들은 얼마 전 계엄군을 막아 세웠던 시민”이라고 말했다.
그의 전작 ‘내부자들’, ‘마약왕’,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악인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하얼빈’은 선한 의지를 갖고 투쟁하는 인물들이 중심에 놓인다.
우 감독은 “둘 다 해보니 선한 인물 표현이 더 어렵다. 악당들의 동기는 상상력으로 만들 수 있는데 이 독립군들의 마음은 진짜 진심이지 않나”며 “실존인물의 모습과 마음이 자칫 왜곡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더욱 절제하고, 또 절제했다. 우 감독은 “당연히 그 분들에 대한 연민이 있을수밖에 없는데 노골적으로 표현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숭고함이 없어지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멀찍이 떨어져서 봐야지 더 숭고하게 담을 수 있다”고 소신을 밝혔다.
“절제. 그게 그분들의 마음이거든요.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숙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독립운동가들의 아우라, 마음 같은 것들을 가만히 앉아서 줄담배만 뻑뻑 피우고 있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거사가 성공하고 나서 저격당한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도, 안중근 장군의 얼굴도 담지 않은 것 또한 우 감독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하얼빈 스틸컷[ CJ ENM 제공]


“명확한 연출 의도가 있었습니다. 부감으로 떠서 끝낸 건 먼저 간 동지들의 시점으로 찍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늘까지 먼저 간 동지들에게 들릴 수 있게 ‘까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달라고 현빈씨한테 주문했죠.”
군더더기 하나 남기지 않는 영화에서 유독, 유일하게 ‘늘어지는’듯한 느낌을 주는 시퀀스는 폭약을 구하러 떠나는 여정이다. 이때 라트비아, 몽골 등 광활한 대자연이 스크린에 가득 펼쳐진다.
우 감독은 “그 여정은 고단하고 지난한 독립운동 과정을 의미한다”며 “안 장군이 하얼빈에서 방아쇠를 당기는 시간은 1분도 안 된다. 근데 거기까지가는 여정이 엄청 길었지 않나. 그 몽타주를 제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 출연한 정우성은 길을 잃은 독립운동가로, 만주의 마적으로 분했다. 우 감독은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이 밥벌이도 안되고 하다보니 마적질로 빠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왜 그 역할을 정우성에게 맡겼는지에 대해 “그 한 장면을 위해 울란바토르까지, 그리고 촬영현장까지 차로 이틀을 걸려 오는 고난스러운 여정을 버텨낼 배우가 없었다”며 “정우성은 이 대본을 읽고, 의미를 알고 자기가 기꺼이 하겠다고 한 것이다. 고마웠다”고 말했다.
우 감독은 극장 개봉 부담감에 대해선 “걱정이 없으면 없는게 이상하다”면서 “그래서 결과가 궁금하긴 하다. 요즘 워낙 다들 빠른 템포의 콘텐츠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이어 “마음을 열고 영화적 체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오락영화를 기대하지 말고 무게감을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온다면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는 현재 찍고 있는 시리즈 ‘메이드인 코리아’를 끝내고 나서는 “다시는 근현대사 작품을 찍지 않을 것”이란 ‘셀프 다짐’을 했다.
“한 작품 끝날 때마다 다시는 근현대사 작품을 안한다고 해놓고 이상하게 또 하고 있더라구요. 이게 제가 선택하는게 아니라 주어지는 것 같아요. 이젠 제 팔자려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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